입소문은 참 무섭다.
어디는 흔하디 흔한 예매와 매진이라지만 지금껏 많은 영화를 보았음에도,
이런 사태는 처음 보는 듯 하다. 오늘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보고프고 보고팠던 고것. 친구들과 같이서 보기로 했던 영화.
'왕의 남자'를 기어이 결국에는 혼자서 보고야 말았음이다.
수 없이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빽빽하게 찬 자리에서 혼자서는 자리를 턱하니 차지하고서 본.
영화 '왕의 남자'는 역시나 입소문 그대로인 듯 했다.
눈을 충분히도 채워주는 볼거리의 풍성함. 시원시원한 대사들.
그리고 아련히 다가오는 음악들과 어우러지는 스토리의 전개와 배우들의 연기.
다행히도 영화 한 편 덕분에 부족하고도 부족함으로, 채워짐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덜은 듯 하다.
진작 그냥 혼자서 볼거를 하는 생각으로 역시나 혼자 보는 영화가 최고라는 생각이 스밈이다.
느지막히 일어나서는 아침을 먹고, 다시금 잠에 스르르 빠져 들어서는,
걸려오는 전화도 받는 둥 마는 둥 무심히도 지나간 주말의 마지막 오전 일과.
다시금 점심을 먹으라는 말에 일어나서는 따끈한 떡국 한 그릇을 떡하니 비우고 나니.
오늘로 미뤄둔 영화를 어찌볼까에 관심이 쏠렸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서 늘상 이럴 필요까지도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사태에 대비해서 예매를 하려하니 역시나 오후 2시 반이었음에도,
5시표는 이미 온라인 예약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달랑 한 장이지만 어찌하겠는가. 7시 20분 표를 예매했다.
예매를 하고 나니 남는 시간은 또 어찌 보낼까를 고민한 끝에,
새벽내내 다운 받아놓은 영화들의 목록을 주욱 살펴보다가 한 편 보고 시간을 때우자로 결론이 났다.
다 보고 나서는 방을 깨끗하게 치웠다.
열심히 닦고 또 닦고 깔끔하게 정리하고 그러는 나를 보니,
오래 전에 돼지우리도 이보다는 덜 하겠다면서 타박하셨던 부모님이 생각이 남이다.
보게 된 영화는 '외출' 이었는데,
순전히 이 영화가 보고팠던 이유는 작가 김형경의 원작 소설 때문이었다.
설렁설렁 감상하면서 본 영화 '외출'은 역시나 시간 때우기에 그쳤을지도 모르지만.
조금이나마 무엇의 그 생각이라는 것의 끈을 한줌 쥐어보게 했었던 듯도 하다.
시일 내로 이전에 사둔 소설을 읽어봐야 겠다. 과연 언제가 될까나? -_-;;
'외출'을 다 보고 나서 어제부터 혼자서 내내 그 영화 꼭 봐야 하는데 라면서,
주절거리는 것을 보신 엄마는 나서는 나를 보면서
"그래, 알았다." 로 다녀오겠다는 나에게 한 마디 건네신다.
처음엔 혼자서 영화를 본다고 하면 의심의 눈초리를 주곤 하시던 엄마가,
이젠 혼자서 어딘가로 여행을 간다해도 별다른 아무말씀이 없으신 것처럼 으례껏으로 여겨주신다.
보고 돌아온 나에게 이제는 영화 어땠냐면서 물어봐 주시는 친절함 까지 베풀어 주시니,
그저 고맙고 또 고맙게 여겨질 뿐이다.
더군다나 "응, 우리 현미는 혼자서 영화 잘 보러 다녀." 라고 하시면서
여기저기 말씀까지 하고 다니시니, 좋게 여겨주시고 인정해주심에 한편으로 나마 다행이라 여겨진다.
그러는 엄마 뒤에서 늘 "누나는 어떻게 영화를 혼자 보냐?" 라고 말하는 동생 녀석은 여전하다.
돌아오는 길에 먹지 못한 저녁을 대신 하기 위해 사온 참치 김밥을 아그작 씹으니,
늦은 시간이라 잘 먹혀지지 않음에 우스울 뿐이다.
집을 나서면서 혼자서 중얼거린 것은 '혼자 보면서 예매까지 하고 나도 참 처량하다.'였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이니 그걸 또 어쩌겠는가. 누가 뭐라하겠는가?
하마터면 그 많은 사람들 틈 속에서 영화를 보다가 울 뻔했던 나를 떠올린다.
나란 사람은 참으로 내가 생각해도 희한하기도 하다.
영화가 계속 진행되는 내내 연민과 애증이란 단어가 오갔던 순간.
아련히도 스미는 기운. 그저 단지 그것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간만에 무언가 채워짐을 느낀 오늘이었기에 스며든 감정의 기운이었을까.
집에 돌아와서는 여운으로 영화 '왕의 남자'의 뮤직 비디오도 보고,
그러다가 갑자기 윤도현밴드 투어가 담겨있다는 영화 '온더로드 투'도 발견했다.
그러고서는 내심 기뻐하는 내 자신을 발견함이다. 참 재밌다.
다행히 부족하고 부족하기만한 일상의 무엇을 채워줌으로 마감한 주말 저녁이라는 것으로,
그저 웃어넘길 뿐이다.
어젯밤의 해리포터 와는 달리 오늘은 영화를 두 편을 보았기 때문일까?
그저 허탈한 웃음을 지을 뿐이다.
아마도 멋진 배우들의 멋진 연기와 풍성한 볼거리를 만끽했기 때문이리라.
영화를 보고 나서는데 머리가 참으로 깨질 듯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지금 이 순간에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참으로 지끈거린다.
마무리 하면서 아마도 영화 '왕의 남자'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해학이 담겨있는,
고 광대패들의 놀이판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 봄이다.
이준익 감독의 특유의 유머와 재치, 어떤 맛깔나는 표현으로 역사 의식의 반영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황산벌'을 보았을 때는 극장에서 인라인 로드 후에 단체 관람이어서
피곤과 함께 집중을 할 수가 없었기에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던 듯 하지만,
어쨌든간에 이번 영화는 이전 작품보다는 훨씬 더 낫다는 평을 들을만 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자꾸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를 보고 또 보다 보니 이제는 감독에게도 눈길을 주는 내가,
역시나 희한할 뿐이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보아도 무방할 그런 영화인 듯 하다.
다시 태어나도 그 자리이겠다는 주인공들의 마지막 대화가 참으로 남음이다.
나도 그럴까. 다시금 현생에서 또 이러할까. 늘 절대로 이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나인데 말이다.
다시 주어지는 생이라면 절대로 이러지 않을거라 다짐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이것이 나니까. 나이니까. 어찌할 수 없는 것인 듯 하다.
마치고서는 음악 감상을 잠시 하다가 이불 속으로 풍덩해야 겠다.
무엇보다 큰 배움 하나는 이제는 주말이라는 시간을 이리 보낼 수 있음에 참 고맙다.
새로이 시작되는 한 주가 순순히 지나가 주기를 바라면서, 모두에게도 그러하기를.
-요건 영화를 본 사람들을 위한 보너스.
(사진은 cine21.com에서 발췌한 것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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