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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없을 시간들.

every day../일상, 일상, 일상.

by 아이리스정 2005. 11. 28.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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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갈 날이 있을까 했던 그 곳은 여전히 그대로 날 반긴다.

이제는 메뉴판 정도는 외울 때가 되지 않았냐고, 일하는 언니가 우스갯 소리를 한다.

 

 

1.

 

시간은 참으로 빠르고도 빠르다.

토요일 오전. 늦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잠들어서는, 일어나서 괜히 한숨을 내쉬어본다.

그렇게 많이 늦지는 않았지만, 괜시리 짜증이 났다.

내 자신에게 내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그렇다고 절대로 토요일 오전, 수업을 가야 하기 때문은 아녔다.

난 중학생 수업이 참 좋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짜증을 낼 필요는 없었다.

그저 또 다짐한 바를 못지킨 내 스스로에게 내는 짜증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입술에 피곤했던지 물집까지 생겼다.

우연히 밥을 먹으면서 본 티비 프로에선,

그 사람이 보고 싶다인가 암튼 사람 찾는 프로가 하고 있는 중였다.

한 청년이 엄마를 찾는 내용이었는데, 그것을 보는 와중에 나오는 장면을 보고선,

어렸을 때. 집에 오면 엄마도 아빠도 다 안계시고, 늘상 혼자였던 내가.

그나마 엄마 학원에서 놀 수 있었기에 다행이라면서 우리집도 저랬는데 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 말에 엄마는 괜히 기분이 안좋은 토요일 아침에 맘이 상하셨는지.

자꾸만 짜증을 내신다. 그런 말을 듣고 기분이 좋겠냐면서 괜히 그 말에 트집을 잡으신다.

엄마와 대판 하고선, 데려다 주신다는 것도 마다하고 뛰쳐나와서 출근을 했다.

수업을 하려는데 오늘도 2명이 결석이다. 어쩔 수 없는 사정에서라지만,

몇 명 되지 않는 수업에서 한 명이라도 결석이 있게 되면 의욕상실은 어쩔 수가 없다.

늘상 미뤄왔던 일과들에 대해 그래 오늘 돌아오는 길에 하면 되겠다 싶어.

차라리 반기는 토요일의 외출이었다.

수업하는 도중 엄마에게 날아온 문자 하나는 차마 오늘은 대꾸할 수 없었음이다.

 

2.

 

영어선생님이 키를 안 가져오신 이유로 내 수업이 끝나고선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꼭 그렇게 무언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어쩔 수 없이 다행히 가져온 책을 꺼내 읽으면서 기다리는 시간. 그렇게 지루하지 만은 않다.

하지만, 분명히 1시간이라는 시간을 낭비하긴 했다.

이것 저것 해야할 일들이 많은 건 사실인데, 뭐 어쩌겠는가.

요즘은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전에는 화가나거나 승질나면,

곧잘 참아내지 못하곤 했는데,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넘어가는 내 자신이.

또 달라진 일상 속에서의 모습인 듯 하다.

 

3.

 

수업을 다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은행에 들려서 돈을 찾고, 서점으로 향했다.

바보같이 저번에 책을 주문하면서 해리포터 3권을 주문하지 않은 관계로 사야겠다 싶어서 말이다.

그러니까 사기 바로 전에 이제 겨우 2권을 마져 읽어서는 3권이 절실히 필요했다.

실은 1권 읽는데만 왜 그리 오래 걸렸는지 모르겠다. 2권은 읽자마자 바로 다 읽었음에도 말이다.

혼혈왕자도 나름대로 재밌다. 조금 부분부분 전에 비해 떨어지는 감은 있지만,

여전히 진행되는 해리의 이러쿵 저러쿵의 호그와트 이야기는 너무나 재밌다.

읽으면서 늘상 느끼는 바이지만, 대체 이 책을 지어낸 사람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싶다.

도대체 일반 머글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것들 아닌가.

어딘가에서 보았는데,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초보나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머글이란 표현을 쓰더라는. 큭. 한 순간 웃었다.

 

4.

 

서점에서 이것 저것 책도 읽어보고 돌아보고 살펴보는 시간을 보내는 와중.

전화가 한 통 왔다.

"아 택배인데요. 지금 집에 계신가요?"

"아..지금 집에 없는데요."

바보같이 습관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고 말을 했다.

분명 엄마가 오전에 잠깐 나가셨다 들어오신다고 했는데 순간 망각을 한 것이다.

아니면 아직 들어오지 않으셨으리라 생각이 들었던 걸까.

그나저나 주문한 헤드폰이 도착한 모냥이다. 책읽는 걸 그만 두고선,

해리포터를 사려고 하니 마침 지갑에 내내 자리 잡고 있는 문화상품권이 생각났다.

잘되었다 싶어서 4권까지 사버렸다. 근데 4권은 12월에 나온다더니 빠르기도 하지.

책을 사고선 걷고 걸어서 근처 마트에 가서 캐모마일 허브티를 샀다.

좀 전에 우려서 먹었는데, 역시나 티백으로 먹을 때와는 또 다르다. 맛이 진해주는게 참 좋다.

내내 이것저것 먹고 싶다는 생각에 먹을 것 하나도 사가지구선,

그렇게 집에가는데 엄마 한테 전화가 왔다.

언제 오느냐고 같이 밥먹자고. 조금 늦을 것 같다고 이제 버스타고 간다고 기다리라구 하구선,

버스를 기다리는데 이 놈의 버스는 여전히 안온다.

버스 정류장에 꽃집이 있었는데,

같이서 버스를 기다리던 한 여인이-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얼굴의-갑자기 가게로 들어가더니,

키가 큰 그러니까 관상용 대나무로 기른 얇은 거시기. 이름을 모르니 암튼.

그걸 잽싸게 사서는 버스가 오는가 안오는가 시종일관 가게 안에서 두리번이다.

가게에서 나오고 나서 그걸 사게 되어 기분이 좋은지 내내 싱글벙글이다.

나도 따라 괜히 싱글벙글이 되더라는.

 

5.

 

집에 오자 마자 밥을 먹는데,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니 엄마가 그러자고 하신다.

처음에는 맛난 것을 시켜주신다고 하더니만,

주말이라도 맛난 걸 먹자가 엄마의 의견인데..암튼 그렇게 내가 사간 만두와 함께.

고기를 열심히 구워 먹었다. 엄마가 밥맛이 없으시다면서,

막내 고모가 우연히 집 근처를 지나가면서 들렀다가 주고 가신 생김치를 드시겠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엄마는 저녁에 고모댁에 가서 고기 먹기로 했다고 별로 드시지도 않는다.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습성이 또 이럴 땐 악영향인 듯 하다.

요새 심기가 불편하신 건 사실인데, 내가 이렇다 할 거시기가 못되니.

그냥 내버려두는데, 이것이 어째 그게 더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청소하시겠다고 버럭버럭 소리 지르시면서 먹었으면 얼른 부엌에 내놓으라고선,

열심히 청소하시고 또 청소하고..그러시는 엄마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문제는 여기다.

나는 이상한 게 고기를 자주 먹지 않아서인지는 모르나,

고기만 먹었다 하면 이 놈의 배가 아프다. 또 그렇게 한바탕 뱃속이 난리가 났다.

그렇게 방에 들어와서 택배로 온 나의 새 애장품이 될 PX200-Sennheiser Headphone-을,

유심히 살펴보다가는 여기저기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번인에 대한 정보도 살펴보고 그러다가 문득 티비를 틀어놓은채로 그렇게 의자에 기댄채로,

그것도 문자를 주고 받고 하다가 잠이 들었다.

PX200. 요놈 생각보다 유닛이 작아서 조금 실망이었지만, 나름대로,

오늘 소리를 듣다보니 실망할 필요가 없는 듯 하다. 소리가 예술이다. +_+!!!

어쨌든 그렇게 한 숨자고 일어났더니만, 이상하게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나더니.

일어나서 부엌엘 가니 연기로 가득이다. 불이 났는지 알았다.

큰방에서 졸고 계시는 엄마를 얼른 깨웠다.

엄마는 그것이 못내 스스로에게 얼마나 한심하셨던지, 아마도 눈물을 흘리신 듯 하다.

엄마의 성격을 고대로 물려받은 나는 대강은 짐작이 간다. 그 기분이 어떨지..

그러면서, 추어탕감으로 사둔 미꾸라지 녀석들을 싸그리 태워버렸다고,

그냥 저녁은 시켜먹자고 하신다.

저녁으로 오므라이스를 시켜 먹었는데, 속에서 난리가 난다.

앞으론 고기를 먹을 땐 조심해야 겠다. 매번 그렇게 다짐하면서도 막상 먹을 때는 또 다르니 원.

 

6.

 

금요일 밤에 약속한 친구와의 약속이 친구 사정으로 좀 늦어지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서서히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그래도 잠시라도 나갔다 와야겠다 싶어 나섰는데, 그 역시나 꼭 필요했던 시간일까 의심스럽다.

이래저래 이야기를 하다가 동창들에게 연락을 여기저기 하고나선, 불러내고 그러다가..

결국은 그 늦은 시각에도 불구하고 전대로 향했다.

저기 사진속의 장소. 그 곳에 도착해서는 맛나게 술을 먹고 또 먹고..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집에 가야한다는 압박에도 불구하고, 무시해버리면 그만일 시간을.

또 지금 가면 다신 얼굴을 안보네, 어쩌네 소리에 결국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오늘 오전에 내내 생각하다 보니, 수업도 결국은 못하게 된 내 자신을 보면서,

그냥 그 만나기로 한 친구와 가볍게 한 잔 하고 들어올 걸 또 그러해버린 내 자신을 탓해본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라는 거 뻔히 알거니와 그저 우스울 뿐이다.

그리고 역시나 동창녀석들과 보내는 시간 중에 느낀 사실인데, 남자들은 하나같이 다 똑같다고..

그런 생각이 스쳐지났다.

집에 늦게 들어온 건 사실인데, 몇 시에 들어왔는지 조차 의문이었다.

몸이 좋질 않았던 탓인지. 하루 종일 내내 잠을 자게 되면 땀이 뻘뻘이시다.

오전의 사태를 수습한 뒤에 한 잠자고 나니 그러했고.

점심을 먹고, 이것저것 하고 그러다가는,

저녁을 먹고서는 다시 정리된 방에 들어와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든 듯 하다.

역시나 땀에 젖은 옷들이 날 당황케 한다.

어젯밤에 무리를 한 건 사실이지만, 내내 몸이 안좋은 건 사실인듯 하다.

드디어 서서히 풀려가는 일상의 무의미들에 잠도 잘자게 되고 하니 한꺼번에 몰려오는,

피로감일지도 모르겠다.

 

7.

 

그렇게 다시 월요일 새벽이다.

토요일날 사온 해리포터 책은 아예 펼쳐보지도 않았고,

난리도 아닌 방을 오늘 오후에서야,,겨우 치웠고.

CDP를 망가트려서 걱정은 했지만 다행히 시디가 돌아가는 데는 지장이 없음에 안심을 하고.

이틀 번인을 조금 했더니만 소리가 아주 멋들어지게 깊어주는 헤드폰에 감탄 중이다.

그리고 사온 허브티를 시음해보니 역시나 그 맛 참 간만이라 반갑고.

날 편안하게 해줌에 만족스럽다.

그리고 늘 곁에서 함께 해주는 이에게 화이팅이라는 안부도 건넴이다.

부어버린 입술이 조금은 가라앉은 듯 해서, 다행이며,

이제 속도 안정이 되서 서서히 괜찮아지는 듯 해서 다행이다.

오늘 수업듣겠다고 나온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늘 신경쓰는 척 하면서 엄마에게 신경쓰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나 죄스럽고.

저녁께 걸려온 동생들의 전화에 반가이 해주지 못함을,

그 역시나 이제는 필요없을 것들이라 여겨 마지 않음이 살짝 못내 미안스럽다.

작년 겨울. 그렇게 쓸데없이 보냈을 미친듯이 달렸던 시간들이 스쳐지나면서,

아마도 나는 어젯밤 그것이 내심 걸렸었나보다.

그렇게 또 새벽이 지난다.

내일 다시 시작될 일과..필요없을 시간들일지 모르는 그런 시간들을 보내면서,

그렇지만 또 어쩔 수 없는 시간들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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