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교생들을 위한 학교라서 교생이 떼거지로 몰려왔던 그 때.
참 친하게 지냈던 교생 선생님 한 분이 마지막으로 학교를 떠나면서,
내게 건넸던 엽서 한 장엔 시가 하나 적혀있었다.
자신이 직접 타이핑 해서 엽서에 붙인 시.
그것은 첫마음의 소중함이었다.
오늘 문득 그 엽서 한 장이 생각이 났다.
무엇이든 그렇게 참으로 중요한 처음 시작의 마음.
처음으로 졸업이란 걸 할 때, 초등학교 졸업식 날 펑펑 울었던 때.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의 장기를 보였던, 중학 시절 풍물반 첫 공연 날.
처음으로 친구들과 어울려 시내 극장 한 구석에서 보았던 영화 한 편.
처음으로 너무나도 갖고팠던 시디 한 장, Radio Head의 시디를 거머쥐었던 날.
처음으로 장대한 무언가를 위한 크디큰 관문을 거쳐야 했던 수능시험 날.
그리고 처음으로 먹어본 알싸한 느낌의 대학 선배가 건네준 레몬 소주 한 잔.
처음으로 누군가의 앞에서 노래를 불렀을 때의 느낌.
처음으로 가장 가까운 이가 죽음이라는 문턱을 밟았던 할머니의 장례식.
대학 2학년이 되어서 처음으로 손에 쥔 휴대폰.
처음으로 내가 번 돈이라며 과외비로 받은 돈으로 산 카세트 플레이어.
처음으로 내가 사는 곳에서 벗어나 어딘가로 향했던 첫 서울행 기차.
처음으로 나만이 쓸 수 있는 컴퓨터가 내 방에 들어오던 날.
처음으로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던 이들의 공연을 보던 날.
처음으로 그렇게도 싫어하던 물 속을 헤집고 다녔던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날.
처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어 마냥 신나하던 그 날.
처음 인라인을 사서 신고 마구 신나고 신나서 타는 법을 배우던 그 날.
너무나도 수없이 많은 처음의 경험을 한 지난 시간들.
처음으로 친구로 인해 아파했고, 2년이라는 시간들을 눈물로 채웠을 시간.
사람이라는 것이 그렇구나 알게 된 그 때. 상처의 순간.
아마도 처음이라는 마음은 그렇게 지나고 지나 다시 다가온 것들에게,
감히 용감하고도 용감하게 아무렇지 않게 대처해 나가는 시간들.
졸업이라는 것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의 나의 모습도.
차곡 차곡 쌓아가는 많은 테잎들과 시디들의 음악들.
크디큰 관문의 시험을 거치게 되는 순간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면서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능력을 과시했던 날들.
세월이라는 것을 어쩌지 못해 땅 속에 묻혀야 하는 할아버지,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부모님께서 건네주신 돈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제법 손에 쥘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사 모으고 필요한 것들을 사는 것.
시간이라는 것이 지나 이제는 검도라는 것을 하면서 먼저 배운 사람이 되어서는,
이것저것 가르치는 모습이 되고.
일터에서는 지긋하리 만큼의 전쟁이라는 시간이 하루 하루 지나고.
그 때가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셀 수 없이 많이 타게 된 기차.
혼자서의 떠남도 두렵지 않을 기차행들.
모든 것들이 다 열거하고 나열하지 않아도 지나는 시간 속에서,,
이제는 많이 무뎌져 가는..그런 모습들.
처음으로 이 공간이라는 것을 만들면서 가졌던 이것 저것들의 계획.
처음으로 내 마음 다해서 누군가를 향한 부르짖음. 사랑.
그 또한 마찬가지로 모든 것과의 같은 이치로 그렇게 내게 남겨짐.
구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처음의 그 모습과는 다르게 알아서 척척 알아지는 것들.
그렇게 일상들이 지나가는 세월.
불과 25년이라는 짧은 시간 이지만 그 속에서 알아가게 된 처음의 것들.
그리고 다시 남은 세월 기간 동안 알게될 처음의 것들.
이제는 두렵지 만은 않은 그런 시간들일 거라,
처음의 어떤 마음의 설렘은 아닐거라 살짝 스쳐보냄이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참 많은 것 알아지는 살아감의 중간 쯤의 경계가 될 나이인 듯 하다.
늦은 밤. 친구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와서는 묻는다.
"야. 이 나이가 되면 다 이러냐?"
"왜? 어쩐데 그러냥."
"그냥 멍하다."
"그게 우리 나이가 그렇자나. 그럴 때자나."
"그러냐..."
아무것도 아닐 나의 확인 대답에 위안 삼는 친구의 모습.
그렇게 거짓이 될지 모르는 언젠가 보자의 말도 서슴없이 하게 되는 일상들.
그러면서 문득 스쳐가는 대화 하나.
"거짓말 되네~ 못한다믄서."
"그게 지금은 필요하니까."
"그래, 앞으론 더 많이 필요하게 될거야. 그것이 꼭 거짓이라 해서 나쁜건 아니거든."
행여라도 거짓말을 하게 되면 큰일이라도 나게 될 줄 알았던 나는.
대학 시절, 3학년이 되던 해. 어쩌다 보니 한총련 출범식이라는 행사를 참여하기 위해 부산을 가면서,
부모님께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다. 남들은 웃을지 모르지만,
그게 생전 처음 해 본. 부모님에게 한 거짓말이었다.
이제는 수없이도 셀수 없이 많아진 거짓이거늘.
시간이 지나고 지나면서 배워간다는 것이 죽는 그 순간까지, 지속되어줄테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아무것 없이 지나는 일상일지라도,아주 조그마한 것 하나라도 배움이 된다고 말야.
그렇게 오늘 마감하는 시간이 다가오면서 머릿속에 맴도는 것들을 정리해 보는 순간이다.
요 며칠 나를 곤히 재워주는 음악들과 함께 말이다.
어디선가 이 음악을 처음 듣자마자 사들인 시디.
여전히 처음 설렘의 마음은 어딘가에나 존재해.
귀에 딱 와서 달라붙는 음악들. 책을 읽다가 문득 발견하는 몰랐던 문구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보게되는 사람들의 무수한 마음들의 움직임들 일상.
사람들에게 건네는 평범할지 모르는 안부의 주고 받음.
앞으로 살아갈 날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몰라줄 것 같은 기분들.
다가와 줄 것들에게 미치도록 설레고 기뻐할 것들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그저 처음의 마음. 그 마음이 있었다는 그 것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순간.
그리 이제는 순간의 것들로, 뿐이 되는 그 마음들로. 그렇게 지나지는 일상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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